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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사소하지만 못 배운 티나는 사람 특징 3가지

by 그말@ 2025. 6. 25.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도 있고, 오랫동안 곁에 머무는 깊은 관계도 있죠. 그런데 문득 어떤 사람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마음 한구석이 조금은 불편하거나 씁쓸했던 경험, 다들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그게 어떤 거창하고 대단한 사건 때문이 아닐 때가 더 많습니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 무심코 드러난 행동 하나가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짓고, 우리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곤 하죠. 학력이 높고, 사회적인 지위가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품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진짜 ‘배움’이란 지식의 양이 아니라, 타인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바로 그 지점에 대해,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쳤을지 모를 그 미세한 균열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1. 공공장소에서 '나 하나쯤이야' 하는 행동

우리가 ‘배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장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공간이 어딘지 아십니까? 바로 불특정 다수와 함께 머무는 공공장소입니다. 도서관, 카페, 영화관, 그리고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대중교통 같은 곳들이죠. 이런 공간에서 한 사람의 진짜 품격이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카페에서 음료를 다 마시고 난 뒤의 테이블을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깔끔하게 냅킨과 빨대를 컵 안에 정리해서 반납대에 가져다 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치 폭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마시던 그대로, 냅킨은 흩어져 있고 시럽 자국이 선명한 테이블을 그대로 두고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후자의 사람들은 아마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나 하나쯤이야. 어차피 직원들이 치울 텐데 뭐.’

이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 이것이 바로 배움의 깊이가 얕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입니다. 이 생각의 뿌리에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부재가 깔려 있습니다. 내 눈앞의 편안함이 다른 누군가의 수고로움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인지하더라도 애써 외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게으름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유아기적 사고방식의 연장선에 가깝습니다.

대중교통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옆 사람이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통화하는 사람,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대놓고 밝게 켜서 영상 콘텐츠를 소리까지 흘려보내며 시청하는 사람. 이들에게는 ‘공동체 의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희박합니다. 이 공간은 나 혼자 전세 낸 공간이 아니라, 각자 다른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러 사람이 잠시 공유하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없습니다. 내가 누리는 자유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약속의 기본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배운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조심합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공간일수록, 나의 행동이 곧 나의 얼굴이 된다는 사실을 압니다. 내가 남기고 간 자리가 다음 사람이 기분 좋게 이용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내가 잠시 머무는 이 공간의 평온함을 깨지 않으려는 노력. 이것은 지식을 쌓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배움’입니다. 세상을 나 혼자가 아닌 ‘우리’라는 관점으로 바라볼 줄 아는 성숙한 지성의 표현인 셈입니다. ‘나 하나쯤이야’가 아닌 ‘나부터 먼저’라는 마음가짐, 그 작은 생각의 전환이 한 사람의 품격을 결정짓는 법입니다.

 

 

2. 남이 말하는 중에 말을 자른다

타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못하고 자꾸 끼어드는 사람, 이건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닙니다. 말을 끊는다는 건 “지금 당신 말보다 내 생각이 더 중요하다”는 무언의 선언이기도 합니다. 학력이나 배경과 무관하게,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태도는 사람됨의 깊이를 보여주는 기준이 됩니다. 제대로 배운 사람은 아는 걸 자랑하기보다, 모르는 걸 배우기 위해 더 오래 듣습니다.

대화를 나눠보면 그 사람의 깊이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깊이란, 얼마나 유창하고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얼마나 잘 들어주느냐에 달려있을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상대방이 무언가에 대해 조심스럽게 자기 생각과 감정을 꺼내놓고 있는데,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 그거? 내 생각엔 말이야”,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한 거지”라며 불쑥 치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대화의 흐름을 완전히 깨뜨릴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깊은 모멸감을 줍니다. 말을 끊는 행위 속에는 여러 가지 심리가 숨어있습니다. 첫째는 조급함입니다. 상대의 말을 듣는 순간, 반박할 거리나 덧붙일 내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이 사라질까 봐 참지 못하고 바로 뱉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기보다, 내 차례를 기다리며 머릿속으로 자기 할 말을 시뮬레이션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둘째는 지적 우월감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나는 너보다 더 많이 알고,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인 것이죠. 상대의 이야기는 그저 자신의 지식을 뽐내기 위한 발판이나 재료에 불과합니다. 이런 사람과의 대화가 끝나면 우리는 늘 허탈감에 빠집니다. 내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정작 내 마음은 전혀 알아주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배운 사람은 ‘경청’의 가치를 압니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소리를 귀로 받아들이는 행위가 아닙니다. 상대방의 말뿐만 아니라 그 말에 담긴 감정, 뉘앙스, 그리고 차마 말로 다 하지 못한 배경까지 헤아리려는 적극적인 노력입니다. 제대로 된 경청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가 존중받고 있구나’라는 안정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안정감 속에서 더 깊고 진솔한 이야기가 오고 갈 수 있는 법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정말 현명하고 지혜롭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대부분 말이 많기보다 깊게 듣는 쪽 아니었습니까? 그들은 섣불리 판단하거나 조언하려 들지 않습니다. 충분히 듣고, 공감하고, 상대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질문을 던져줍니다. 말을 끊는 것은 ‘나는 너에게 배울 것이 없다’는 오만한 태도의 표현이며, 끝까지 듣는 것은 ‘나는 당신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배우고 싶다’는 겸손한 지성의 표현입니다. 당신의 대화 습관은 어느 쪽에 더 가깝습니까?

 

 

3. 정중함과 친근함을 헷갈린다

못 배운 티는 꼭 무례한 행동에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친한 척, 거리 좁히기라는 명목으로 선 넘는 언행을 보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반말을 하거나, 나이 차이를 무기로 삼아 무례하게 군다면 그건 배움의 부족이 아니라 태도의 부족입니다. 진짜 배운 사람은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기본적인 예의는 지킵니다. 친근함이란 예의 위에 얹는 것이지, 예의를 무너뜨려서 만들어지는 건 아닙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유독 사람 사이의 ‘거리 조절’에 서툰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특히 ‘정중함’을 지키는 것을 어색하거나 불필요한 것이라 여기고, 무작정 ‘친근함’을 내세우며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는 유형이 그렇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초면에 반말하기’입니다. 나이가 조금 더 많다는 이유로, 혹은 사회적 직급이 조금 더 높다는 이유로 상대방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말을 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상대를 편하게 대해주려는 ‘배려’라고 착각할지 모릅니다. “아, 내가 더 나이도 많으니까 말 편하게 할게.”라며 일방적으로 선언해 버리죠. 하지만 이것은 배려가 아니라, 힘의 우위를 이용한 월권행위에 가깝습니다. 관계의 속도는 쌍방의 합의하에 조절되어야 하는 것인데, 한쪽이 일방적으로 규정해버리는 순간 그 관계는 건강하게 시작될 수 없습니다.

또한, 친해졌다는 착각 아래 사적인 질문을 서슴없이 던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은 언제 할 거예요?”, “애인은 있어요?”, “그 가방 얼마 주고 샀어요?” 와 같은 질문들은 상대방을 알아가기 위한 관심의 표현이 아닙니다. 그저 타인의 사적인 영역을 존중할 줄 모르는 미성숙함의 발로일 뿐입니다. 그들은 친밀감과 무례함의 경계선을 알지 못합니다. 아니, 어쩌면 그 경계선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관계를 자신의 통제하에 두고 싶어 하는 욕구의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배운 사람은 ‘존중’이라는 안전거리를 반드시 확보합니다. 그들은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심리적 경계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계선을 넘을 때는 반드시 상대방의 허락을 구하거나, 조심스럽게 신호를 보냅니다.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더라도, 상대가 불편해할 수 있는 언행은 스스로 통제할 줄 아는 것입니다.

친근함은 무례함으로 쌓아 올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예의라는 단단한 기초 위에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피워내는 꽃과 같습니다. 기초가 부실한 곳에 급하게 꽃을 심으려 하면, 그 관계는 이내 시들어버리기 마련입니다. 정중함이라는 틀 안에서 서로를 배려할 때, 비로소 진짜 신뢰가 싹트고 그 위에서 건강하고 기분 좋은 친밀감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섣부른 친근함의 과시가 아니라, 묵묵히 지켜주는 정중함이야말로 더 깊은 관계를 위한 진정한 배움의 태도입니다.




지금까지 사소하지만 못 배운 티나는 사람 특징 3가지에 관해 말씀드렸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행운과 풍요로운 인생의 여정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BCWIhQYmLtc